92학번 우지원 결혼 17년만에 방송인 이교영씨와 이혼

2025. 3. 2. 14:49스포츠

연세대 92학번 농구부 출신으로 수 많은 팬들을 몰고 다녔던 우지원 선수가 결혼 17년만에 아내 이교영씨과 이혼했다.

슬하에 딸 둘이 있다.

우지원 선수는 1990년대 초반 연세대학교에서 농구 선수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연대 1학년 때 농구대잔치 신인상을 받았고, 2학년 때는 연세대가 대학 팀 최초로 실업팀들을 모두 제치고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하는 데 주역으로 활약했습니다.

외모와 실력으로 팬들의 인기를 얻었지만, 슛은 매우 정확한데 돌파 성공 확률이 너무 낮아서 '반쪽짜리 슈터'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프로 입단 후 대우증권, 삼성 썬더스 등을 거쳤지만, 초기에는 팀 성적 부진과 함께 저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비스로 이적한 후 과거 연대에서 지도 받았던 최희암 감독의 지원 아래 팀의 주포로 다시 활약하며 2002-03, 2003-04 시즌에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줬습니다.

우지원의 전환점은 2004-05 시즌 이후였습니다.

부상과 나이로 인한 기량 저하를 겪으면서, 그는 자신의 플레이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팀을 위해 헌신하는 식스맨으로 변신하여 후배들을 독려하고 승부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2006-07 시즌에는 식스맨 상을 수상하고 첫 우승 반지를 차지했습니다.

우지원의 장점은 뛰어난 3점 슛 능력과 꾸준한 자기 관리였습니다.

어릴 적 사고로 인한 팔 부상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슛 폼으로 성공적인 외곽 슈터가 되었습니다. 그의 철저한 자기 관리로 거의 경기를 결장하지 않았고, 말년에는 51.5%라는 놀라운 3점 슛 성공률을 기록했습니다.

2009-10 시즌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후 은퇴했으며, 2010-11 시즌 개막전에서 모비스의 두 번째 영구 결번(10번)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우지원은 처음에는 외모와 슛 능력으로 주목받았지만, 후반기에는 팀을 위한 헌신과 변화로 팬들의 존경을 받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선수 생활은 한국 프로농구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이야기로 남아있습니다.

우지원의 배우자 이교영은 1978년생으로 서울대 작곡과 출신이로 2002년에 두 사람은 결혼했고, 두명의 딸을 낳았으나 2019년 우지원과 이혼했다.

73년생인 우지원은 연대 92학번으로 이교영이 서울대 작곡가 다닐 때, 첫눈에 반해 그를 거부하는 이교영을 지속적으로 따라다니며 결국 교제한지 300일만에 청혼하고 2002년 결혼에 골인한다.

이교영은 5살 아래로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바로 결혼을 하게 된다.

둘은 TV프로 "자기야"에 나오며 세상 사람들에게 아주 유명한 커플이 된다.

 

그러나 2014년 둘이 술을 먹다가 우지원이 선풍기를 집어 던지는 사건으로 경찰서까지 가게 됨으로 다른 사람들의 우려를 가지게 했으며, 결국 5년 후인 2019년 이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