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8. 15:55ㆍ한반도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자마자,
미국은 즉시 일본 본토 및 한반도 등의 일본군으로부터도 항복을 받아야 했는데,
미군은 그때 한반도에서 1천km 남쪽 멀리 오끼나와 섬에 있었다.
또 미군은 주로 일본 본토에 들어가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는 데만 정신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에까지 군대를 신속히 보낼 여유가 거의 없었다. 아니 일본만 접수하는 것이 제1 목적이었으며 한반도는 신경을 거의 쓰지 않았다.
일본과의 4년간의 기나긴 전쟁에 지친 미국 군부는 아시아 대륙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별로 하고 싶지 않았으나 미국무부가 하도 우겨서 나중에 한반도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소련은 일본의 패망하자 신속히 군대를 한반도에 진입시킬 수 있었다.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바로 다음날(8월9일)에는 벌써 만주국과 함경북도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3일 후인 8월12일에는 청진-나진-웅기-경흥 등의 일본군을 쉽게 이기고 점령해버렸다.
이런 속도라면 불과 2~3주 사이에 소련군은 한반도 전체를 다 점령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서둘러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8월14일(워싱턴 시각) 밤늦게 소련에 연락하여
한반도 중간의 북위 38도선까지만 남하를 허용하기로 결정하고 소련에 통고했다.
당시 같은 편이었던 소련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2차세계대전 중 소련은 독일과는 오랫동안 싸웠지만 일본과는 겨우 1주일간 적대관계에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일본과 한반도에 관한 한 소련의 발언권은 거의 없었으므로 38선 이남은 점령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청을 순순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소련이 욕심을 냈다면 38선이 아니라 37선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단 한반도에 들어간 쏘련군은
곧 38도선 이북의 자기네 점령지역을 소련군 대위 출신 김일성(당시 36세, 김성주)을 앞세워 북한을 위성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소련은 독일과 이탈리아가 연합국에게 1945년 5월에 항복한 후, 소련은 전쟁 중 점령한 동부독일을 비롯하여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불가리아-루마니아 등을 전부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미국 국무부는,
소련이 일단 점령한 나라는 반드시 적화(공산화)시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쏘련군이 한반도 전체를 다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북위 38도선에서 소련군의 남하를 저지시켰던 것이다.
그 때 미군이 38선을 빨리 제안하지 않았다면, 소련이 한반도를 다 차지하고 우리나라는 공산국가 통일 국가로 시작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공산체제 후조선이 자본주의 일본과 경쟁했을 것이다.
이 경우는 한국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1945년 민족의 분단을 가져온 38선은 우리에게 재앙이었는가? 축복이었는가?
사실 모든 이들이 38선은 통일신라 이후, 1300여년간 한반도에 유일하고 단일 민족 국가였던 우리 민족을 둘로 나누어서 아마 영원히 합쳐지지 않을 비극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맞다.
약소 민족은 이렇게 더 작게 쪼게진다. 주위의 강대국들에 의해 ...
하지만, 좋아진 점도 있다.
우선 고조선, 고구려 이래 처음으로 중국과 경계선을 하지 않고 북한이라는 중간 국가가 생겼다는 것이다.
물론 서해를 통하여 중국과 밀접하고 붙어 있지만, 육지로 국경선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베트남은 중국과 국경선이 있고, 태국은 없다.
중국와 태국 사이에는 미얀마와 라오스가 있다.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 되기 전까지 5000년간 우리 민족의 국경선은 모두 중국이었다.

만주족과 말갈족, 몽고족을 중국이 아니라고 해도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때 우리나라 북쪽 국경은 커다란 중국의 나라였다.
중국 남북조 시대 이후로는 중국에 주로 큰 대국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중국에 많은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원나라 때는 아예 원나라에 포함된 지역국이었으며, 명나라와 청나라에 우리는 독립국이었지만, 사대하는 신세였다.
청나라의 크기가 조선보다 50배 이상 크고, 인구도 10배 이상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1860년 베이징 조약으로 드디어 중국이 아닌 러시아란 나라와 조선은 처음으로 국경을 가지게 되었다.
중국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게 되는 시작이 그 때이다.
1895년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청나라가 물러나자, 우리는 일본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45년 일본이 망하자, 우리는 둘로 쪼개져 미국과 소련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그것이 아직도 이어오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아직도 아주 친하고, 우리도 미국과 아주 친하다.
다른 견해가 있을 지 모르지만, 나는 1945년 38선이 우리 민족 5000년 역사의 최악의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힘 없는 민족의 한계이다.
최악의 결과이다.
이제 통일도 점점 어려워 지고 있다.
민족의 이질화가 너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구한말 나라를 구하려던 선조들과 일제 시대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받친 선열들에게 이런 상황이 너무 미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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